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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커피는 어떻게 등장 했을까?

구다이mate 2022. 9. 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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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밀접하고 자주 접하는 커피에 대해서 알아본다.

 

 

ㅣ 인스턴트커피의 등장은 농업혁명에 견줄 ' 제1의 물결 '

인류의 문화는 농업혁명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앨빈 토플러의 논리를 커피 역사에 적용하면 인스턴트커피의 확산은 ' 제1의 물결 '이라고 칭할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반작용이든 순작용이든 스타벅스로 상징되는 프랜차이즈 커피와 스페셜티 커피의 물결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2000년인 커피 역사에 국가마다 나름대로 기여한 바가 있다. 에티오피아는 커피 종자를 이 땅에 처음으로 품어냈고, 예멘은 커피 경작의 길을 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메카를 통해 커피를 이슬람 국가 전역에 퍼트렸으며,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상인은 커피를 상업적으로 볶기 시작했다. 이란의 의사들은 커피를 치료에 접목하며 의학적 쓰임새를 찾아냈다.

 

오스만 제국(터키)은 예멘에서 커피를 빼내 유럽으로 전파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에 의해 커피는 유럽 땅을 밞았다. 네덜란드는 국제적인 커피 생두 무역을 통해 커피 산지를 인도네시아로까지 넓혔고, 프랑스는 남아메리카 대륙에 커피를 꽃피우게 했다.

 

기나긴 커피 역사에서 인스턴트커피는 20세기 들어서야 미국에 의해 등장한다. 인스턴트커피의 확산은 인류 문명사에서 농업혁명에 비견돼 ' 커피의 제1 물 격 ( The first wave of coffee )이라 불린다. 여긴에 엄청난 물량의 커피를 생산해낸 브라질의 역할도 지대했다.

 

 

ㅣ 미국 카우보이와 커피의 관계

미국에 커피가 전해진 건 1620년대지만, 국민들이 마시는 차를 제쳐두고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 건 1773년 ' 보스턴 차 사건 ' 이후다. 커피 대중화가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 비해 100여 년이나 늦은 셈이다. 그럼에도 인스턴트커피가 미국에서 탄생한 것은 커피를 마시는 '신속함'과 '간편함'에 대한 간절함을 먼저 절실히 경험해서다.

미국은 광활한 땅 때문에 야영문화가 일찍부터 형성했다. 동부에서 서부로 주거지를 개척해나가며 카우보이는 각성과 활력 등 커피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잦아졌고, 인디언과 수시로 전투를 치러야 하는 민병대에게도 커피는 매우 요긴했다. '카우보이 커피'는 19세기 초 미국의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추출법이다.

 

카우보이들이 들판이나 산속에서 야영하며 코펠과 같은 냄비에 물과 커피가루를 함께 넣고 끓여내 마신 방식이다. 추위와 졸음을 물리쳐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런 방식의 커피 추출은 향미는 떨어져도 간편했기에 애용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카우보이 커피는 플란넬로 만든 주머니에 커피가루를 넣고 끓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ㅣ 커피가 미국 남북전쟁 승패를 가르다

커피의 위력은 1861년부터 4년간 치러진 남북전쟁 ( American Civil war ) 에서 더욱 돋보인다. 북군을 이끈 링컨 대통령은 1862년 남군 지역의 항구를 봉쇄했다. 이로 인해 남군은 전쟁 내내 커피를 공급받지 못했다. 커피에 굶주린 남군은 고구마나 사탕무를 커피처럼 진하게 볶아 물에 끓여 마시기도 했지만 카페인의 위대한 효과를 누리지 못해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실제 커피가 남북전쟁의 승패를 갈랐다는 견해도 있다. 북군을 이끈 벤저민 버틀러 대장은 북군이 승리한 이유 중 하나로 커피를 꼽았다. 북군은 전투 교범에 '커피는 강인함과 에너지의 원천이다'라고 천명하고, 병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커피를 공급했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은 병사 한 명이 하루 평균 1.8L 의 커피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병사 한 명당 제공된 커피는 1년에 16kg에 달했다. 그들의 커피 사랑은 지극했다.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커피 원두를 재빨리 갈아 마시려고 아예 소통의 밑동, 일명 ' 개머리판 '에 그라인더를 장착했다. 그라인더를 탑재한 당시의 소총이 전시된 미국 총기 박물관에는 이를 보려는 커피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ㅣ 전세계로 소개된 인스턴트커피

인스턴트커피를 만드는 자, 하늘이 돌보는 것인가. 네슬러가 남아도는 브라질 커피를 헐값에 구매해 인스턴트커피를 만들어 창고를 가득 채울 때쯤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6년간의 긴 전쟁에 돌입한다. 미군에게 보급되는 커피는 네슬러가 독점했다. 제1차 세계대전엔 약 200만 명의 미군이 유럽 전선에 투입됐고, 제2차 세계대전엔 미군 1200만 명이 전선을 누빈 것으로 기록됐다. 이들뿐 아니라 연합군에게도 인스턴트커피가 제공됐다.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간 군인들을 통해 인스턴트커피의 간편함이 지구촌 전 세계적으로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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