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화 ' 아비정전 '을 촬영했던 장소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다른 이면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로 위험하고 무법지대라고 평가 받았곳은 구룡성채입니다. 정식 명칭은 구룡채성 이지만, 한국에서는 구룡채성 보다는 구룡성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상 치외법권 ( 법이 통하지 않는 법 밖의 지역 )이며 매우 위험했던 곳입니다.
구룡성채는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홍콩을 점령하고 홍콩 내에 존재 했었지만 중국이 구룡성채를 군사기지로써 영국을 감시한다는 목적으로 중국이 포기 안한 영토 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영국령 홍콩내에 중국의 영토로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국령이기 때문에 홍콩과 중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으로 전략합니다.
ㅣ 구룡성채의 역사
구룡성채의 역사는 1800년대 송나라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애초에 목적은 해적으로부터 소금을 보호하기 위한 지역 군사기지로서 세워졌었습니다. 1842년에 발발한 중국-영국의 아편전쟁으로 인해서 홍콩섬이 영국령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당시 청나라는 영국을 감시하고자 하는 역할로써 구룡성채를 주요 전략적 거점으로 삼습니다.
영국이 99년 동안 홍콩을 통치하고 반환하겠다고 하는 동안에 중국은 구룡성채에다가 군대와 행정관을 주둔시켜 주권을 행사하겠다고 했으므로, 영국의 행정권이 구룡성채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구룡성채는 영국과 중국 사이에서 관할권을 놓고 어느 쪽도 확실한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기에 구룡성채는 점점 법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ㅣ 구룡성채의 형성 과정 및 철거
세계 2차 대전 이후에 중국 내에서 내전이 일어나면서 많은 중국인 난민들이 홍콩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난민들이 가진 것도 없고, 또한 구룡성채 자체가 주권 공백지역이다 보니깐 자연스럽게 위험한 인물들, 난민들 등 여러 사람들이 구룡성채로 모이게 됩니다. 구룡성채는 본래 2-3층으로 되어 있는 작은 규모의 단독주택들이였지만, 증축에 증축을 해서 15층까지 쌓아 올렸습니다. 단독주택단지에서 아파트 단지로 거듭나게 됩니다. 물론 불법으로 증축 한것이기 때문에 건축상 안전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고, 배수로 같은 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던것이 아니여서 위생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체류하던 의사들도 무면허 의사들이 대부분이였다. 구룡성채는 외곽이랑 옥상에만 햇빛을 받을 수 있었으며, 내부에는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곳 이 였다. 또한 가운데에는 증축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가운데에 상점이나, 유치원, 양로원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룡성채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구밀도를 기록했으며, 이는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가로 세로 각각 30미터 면적에 최대 5만 명이 밀집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는 가로 세로 각각 1킬로미터 면적에 인구 170만 명의 인구밀도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 광역시의 인구가 100만 명 )
1980년대에 중국에게 홍콩 반환이 다가옴으로써, 구룡성채의 철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시작했습니다.
1993년에 완전히 철거됩니다.
홍콩 구룡성채의 변화된 현재 모습 보기
ㅣ 구룡성채에서의 생활은?
법률상으로는 중국 영토이지만, 제대로 된 주권 행사가 없었기 때문에 치안 유지를 위한 공권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구룡성채는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었고,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주민들이 합세해서 자경단을 운영하였지만, 실질적으로 통치하던 집단은 삼합회가 됩니다.
감합회는 세계 3대 조직( 마피아, 야쿠자, 삼합회 ) 이로써 규모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집단이었습니다.
구룡성채에서는 삼합회의 말이 법이었던 것 입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홍콩 경찰의 대규모 삼합회 검거작전에 의해서 구룡성채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ㄴ삼합회가 없어진 구룡성채는 더욱 무질서한 곳으로 변해 갑니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중국으로부터 넘어온 범죄자 및 밀입국자들은 늘어가고, 범죄율은 더욱 올라갔습니다.
삼합회가 있었을 때는, 삼합회가 규칙을 정하고 중재를 해준다고 하지만, 그들이 없어진 이상 그 누구도 규칙을 만들거나 중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위험한 지역이라고 홍콩 사람들은 근처에도 얼씬 거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룡성채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이 옥상에서 웃으면서 뛰어놀았고, 자체적으로 만든 학교에서 교육을 배우는 사람도 있었고, 유치원, 양로원, 이발소, 식당 등등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다 존재해 있었습니다.
구룡 성채에서는 위험과 평화, 희망이 공존하는 곳 이 였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쳐 온 사람들에게는 구룡성채가 몸을 숨 길 수 있는 보금자리였을 테고,
중국에서 밀입국으로 홍콩 드림을 꿈꾸고 온 사람들에게는 언젠가는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을 테고,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온 식구가 같이 살 수 있는 보금자리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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